
존 윅 시리즈를 보고 나서 키아누 리브스가 나오는 최근 영화를 찾다가 이 영화를 발견했습니다. 천사 역할이라길래 반신반의하며 틀었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어둡고 묵직한 액션만 해온 그가 이렇게 해맑게 웃을 수 있는 배우였다는 걸 오랜만에 다시 느꼈습니다.
키아누 리브스
저도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존 윅 특유의 스토이시즘(stoicism), 즉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고 행동으로만 말하는 캐릭터의 이미지가 워낙 강하게 박혀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 키아누 리브스는 가브리엘이라는 하급 천사를 연기합니다. 날개도 작고, 맡은 업무도 소소합니다. 운전 중에 사람들이 휴대폰을 보지 못하도록 막는 일이 주 업무입니다.
처음 이 설정을 봤을 때는 살짝 웃음이 났습니다. 천사에도 직급 체계와 분업화된 업무 구조가 있다는 발상 자체가 꽤 신선했거든요. 사실 현대 조직 이론에서도 역할 분화(role differentiation)라는 개념이 있는데, 여기서 역할 분화란 조직 내에서 각 구성원이 특화된 업무를 맡아 전체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구조를 의미합니다. 천사의 세계에도 그게 그대로 적용된 셈이죠.
무엇보다 제가 이 영화를 통해 느낀 건 키아누 리브스의 캐릭터 소화력입니다. 인간 음식을 처음 먹어보고 감동하는 장면, 세금을 왕창 떼이고 좌절하는 장면에서 그 해맑고 어수룩한 표정이 너무 자연스러웠습니다. 존 윅에서 지쳐 있던 눈빛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아서,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꽤 힐링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는 키아누 리브스의 매력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묵직한 액션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난 가볍고 밝은 연기
- 인간 세계를 처음 경험하는 순수한 리액션
- 과한 코미디 없이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발하는 절제된 표현력
영화 줄거리
가브리엘은 영혼 구제라는 더 가치 있어 보이는 일을 하는 아즈라엘 천사를 부러워하는 캐릭터입니다. 그러다 삶이 바닥을 치고 있는 아지라는 남자를 지켜보면서 그를 돕고 싶다는 마음에 규칙을 어기고 직접 나타납니다. 여기서 규칙 위반의 대가로 받는 처벌이 인간화(humanization), 즉 천사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일정 기간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화란 이 영화 안에서 가브리엘이 신성한 권능을 잃고 밥도 먹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는 평범한 인간의 조건 안에 던져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가브리엘은 아지에게 미래를 보여주면서 희망을 주려 하는데, 사실 그 미래가 그다지 밝지 않았습니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는 택배 회사, 강아지 치료비도 안 되는 형편. 가브리엘 입장에서는 "그래도 지금보다는 낫잖아"라는 의미로 보여준 건데, 아지 입장에서는 당연히 황당하죠. 제가 봐도 공감이 됐습니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 건네는 조언은 아무리 선의여도 설득력이 떨어지니까요.
결국 가브리엘은 더 큰 사고를 칩니다. 아지와 아지의 직장 상사인 제프의 인생을 통째로 맞바꿔버린 겁니다. 이 설정이 영화의 핵심 갈등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인생이 바뀐 건 아지만 알고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게 원래 자기 삶인 줄 알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아지는 제프의 풍요로운 삶을 너무 잘 즐기면서 돌아갈 생각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의 아이러니가 시작됩니다.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 면에서 보면, 이 영화는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차용한 미래 예시 모티프를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 구조 위에 얹어 풀어냅니다. 내러티브 구조란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과 플롯의 짜임새를 의미하는데, 이 영화의 경우 교훈 전달보다 캐릭터 간의 관계와 반응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편입니다. 그게 오히려 이 영화의 색깔을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교훈과 아쉬움
솔직히 제 경험상 이 부분은 좀 아쉬웠습니다.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 즉 돈이 전부가 아니고 소소한 삶에도 의미가 있다는 주제는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설득 과정이 충분히 쌓이지 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지가 다시 자기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계기가 너무 빠르게 처리됩니다. 엘레나를 다시 만나 그녀의 의지를 보고, 가브리엘과 고민 상담을 하면서 변화가 온다는 건데, 그 과정이 조금 더 촘촘했다면 더 오래 여운이 남았을 것 같습니다.
이런 주제를 다루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공감 가능성입니다. 미디어 심리학(media psychology)에서는 픽션 속 캐릭터의 경험이 관객의 현실 인식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이 현상을 내러티브 이송(narrative transportation)이라고 부릅니다. 내러티브 이송이란 관객이 이야기 속으로 심리적으로 몰입하여 현실 감각이 잠시 유예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몰입이 깊을수록 영화의 메시지가 더 강하게 각인되는데, 이 영화는 그 몰입을 완전히 이끌어내기에는 서사 밀도가 살짝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히 좋았던 건, 이 영화에 악인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부자는 악당, 노동자는 선인이라는 공식 없이 세 인물 모두를 그냥 완벽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여줍니다. 그래서인지 보고 나서 마음이 이상하게 편안했습니다. 실제로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도덕적 단순화 없이 복잡한 인간상을 보여주는 콘텐츠가 공감 능력 향상에 더 효과적이라는 결과도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쿠팡플레이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는 것도 접근성 측면에서 큰 장점입니다. OTT 서비스의 콘텐츠 소비 패턴을 보면, 무료로 제공되는 콘텐츠일수록 부담 없이 가볍게 선택하는 경향이 강합니다(출처: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이 영화는 그 조건에 딱 맞는 작품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이 영화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서사가 얽히고설킨 영화를 원하는 분께는 비추지만, 퇴근 후 밥 먹으면서 유쾌하게 보고 싶은 날에는 꽤 잘 맞는 선택입니다. 러닝 타임도 2시간이 채 안 되고, 쿠팡플레이에서 무료로 볼 수 있으니 부담도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존 윅에서 지친 키아누 리브스의 얼굴 대신 이렇게 해맑은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시간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힘든 일상에 가벼운 영화 한 편이 필요하다면,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