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년 뒤 도착하는 우주선에서 혼자 깨어난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그 질문이 머릿속에서 한동안 떠나질 않았습니다. 단순한 SF 로맨스인 줄 알고 틀었다가, 인간의 고독과 이기심, 그리고 사랑의 의미까지 한꺼번에 건드리는 작품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네 번이나 돌려본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주 식민지
스타십 아발론(Starship Avalon)은 지구에서 홈스테드 2(Homestead 2)로 5,000명의 승객과 258명의 승무원을 실어 나르는 항성 간 이주선(interstellar colony ship)입니다. 항성 간 이주선이란, 태양계를 벗어나 다른 항성계의 행성까지 장기 항행하도록 설계된 우주선을 뜻합니다. 아발론은 목적지까지 120년이 걸리기 때문에, 탑승자 전원은 동면(hibernation) 상태로 여행합니다. 여기서 동면이란, 인체의 신진대사를 극도로 낮춰 수십 년을 생물학적 노화 없이 보내게 하는 기술을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영화를 보면서 계속 이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행사, 아니 이주 회사가 진짜 큰 실수를 한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5,000명이 탑승하는 우주선인데, 1년에 한 명씩 번갈아가며 관리 임무를 맡고 다시 동면에 드는 순환 관리자 시스템을 캡슐 설계에 넣어두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건 명백한 설계 결함입니다.
실제로 NASA의 장기 유인 우주비행 연구에 따르면, 고립된 공간에서의 장기 체류는 심각한 심리적 문제를 유발하며, 이를 예방하기 위한 승무원 로테이션과 사회적 지원 체계가 필수적이라고 밝혀져 있습니다(출처: NASA Human Research Program). 영화 속 아발론은 그 기본적인 안전망조차 갖추지 않은 채 출항했던 셈입니다.
엔지니어 짐 프레스턴(Jim Preston)이 깨어난 것도 결국 우주선 자체의 시스템 오류 때문이었고, 저는 이게 단순한 사고라기보다 우주선이 스스로를 고칠 수 있는 인력을 필요로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짐이 깨어나지 않았다면, 그리고 오로라(Aurora Lane)를 깨우지 않았다면, 나중에 깨어난 승무원 거스(Gus)와 함께 핵심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고, 5,000명 전원이 사망하는 결말이었을 겁니다.
이 영화에서 짚어볼 만한 설계 실패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캡슐 재동면(re-hibernation) 기능 부재: 조기 각성 후 다시 동면에 들어가는 기능이 없어 짐은 1년간 홀로 방치됩니다.
- 순환 관리자 시스템 미탑재: 1년 단위로 관리자가 번갈아 깨어나 점검 후 재동 면하는 구조가 없었습니다.
- 캐스케이드 오류(cascade failure) 대응 체계 미흡: 전산 오류가 하나의 시스템에서 연쇄적으로 다른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현상을 막을 실시간 경보 체계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고독이라는 재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짐이 오로라를 깨우는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저는 꽤 오랫동안 그 행동을 그냥 넘기지 못했습니다. 영화는 이 부분을 로맨스로 포장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남은 생 전체를 동의 없이 빼앗은 것입니다.
심리학 용어로 이 상황은 사회적 고립(social isolation)의 극단적 사례에 해당합니다. 사회적 고립이란, 인간이 타인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당했을 때 인지 기능 저하, 우울증, 충동 조절 장애 등이 나타나는 상태를 말합니다. 짐이 1년간 바텐더 로봇 아서(Arthur) 외에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겪는 심리적 붕괴는 이 개념을 영상으로 그대로 보여줍니다.
제 경험상, 이런 선택을 한 짐을 단순히 악당으로 보기도, 그렇다고 완전히 이해하기도 어렵습니다. 영화가 그 불편한 감정을 끝까지 유지시킨다는 점이 저는 오히려 이 작품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로라가 진실을 알고 짐을 밀어낼 때, 관객도 함께 그 감정의 진폭을 경험하게 되는 구조입니다.
고독이 인간의 판단력을 어떻게 왜곡시키는지에 대한 연구는 이미 여럿 존재합니다. 영국 레드크로스(British Red Cross)의 보고서에 따르면, 극단적 고독 상태에 놓인 인간은 사회적 판단력과 도덕적 자제력이 현저히 감소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출처: British Red Cross). 짐의 선택은 그 데이터를 극적으로 구현한 사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지금 삶의 집중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오토독(Auto Doc)이라는 장치가 등장합니다. 오토독이란, 우주선 내에 탑재된 자동 의료 시스템으로, 외상 처치부터 복잡한 수술까지 자동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장비를 의미합니다. 짐은 이 장치에 오로라를 동면 상태와 유사하게 넣어 잠들게 할 수 있다는 걸 발견하지만, 오토독은 한 대뿐입니다. 결국 짐은 자신이 아닌 오로라가 그 기회를 갖도록 선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영화가 하고 싶었던 말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선택이 아무리 잘못되었더라도, 지금 주어진 자리에서 상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결국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여운이 남는 장면이 바로 여기입니다.
마지막 엔딩에서 오로라가 쓴 항행 일지(voyage log), 즉 항행 중 기록된 개인의 서사 기록이 승객들에게 전달되는 장면은 영화의 주제를 압축합니다. 항행 일지는 단순한 일기가 아니라, 자신의 삶이 타인에게 닿는 방식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오로라가 원래 꿈꿨던 '왕복 여행 작가'로서의 삶은 사라졌지만, 그 대신 아무도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아낸 유일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저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분명 사람이 있으나 사람이 없고, 사람이 없으나 또 사람이 있는 역설 속에서, 인간은 결국 서로를 통해서만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네 번을 봐도 엔딩 직전 오로라의 독백이 끝나고 화면이 전환되는 순간, 매번 가슴 한쪽이 먹먹해집니다. 볼 때마다 여운의 감도가 다르게 느껴지는 영화라는 것도 이 작품의 특별한 점입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로맨스 영화라는 선입견은 잠깐 내려두고 한 번 틀어보시길 권합니다. 크리스 프랫과 제니퍼 로렌스의 연기가 이 불편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끝까지 붙잡아줍니다.